말씀 찬양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나고, 만드는 교회
Grace-Bethel Church
주일설교
Grace-Bethel Church

설교제목 : 말씀의 은혜를 받자

본문

지난주간에는 북극한파가 몰려와서 갑자기 추워져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 다시 회복되어가는데, 지난주에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참 황당한 사건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청년이 죽은 사건입니다. 그것도 예배를 드리다가 졸다가 떨어져서 죽은 사건입니다. 다행히 그가 다시 살아나기는 했지만, 위험천만하고도, 교회에서 시험에 빠질만한 그런 위기의 사건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왜 성경에 굳이 이런 내용을 기록을 했을까?

설교시간에 졸면 죽는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기록을 한 걸까요?

 

9절에, ...사도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라고 표현 한 것을 보면, 사도 바울이 평소보다 설교를 좀 더 길게 한 것 같습니다하여간 목사님들의 설교가 길어서 문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입니다요즘은 목사님들도 욕 안먹으려면 “설교는 딱 30,” 그 보다 더 길면 안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이 설교를 그렇게 길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중 3년간 에베소에서의 선교 활동을 마치고 마게도니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행하는 길이었습니다.

 

4절에 보면 이 때 사도 바울과 동행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상당히 많은 사람이 사도 바울과 동행하게 됩니다. 이는 에베소에서의 말씀 훈련이 크게 열매 맺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도에 자신의 일생을 건 모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함께 드로아에 이르러 1주일 간 머물며 설교를 했는데, 마지막 날이 주일이었습니다바울은 내일이면 떠날 형편이라 말씀을 하나라도 더 전하려다 보니 설교가 길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3층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입니다바울이 곧 내려가서 보니까 사람이 죽어 있는 것이지요그 때, 바울은 유두고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두려워하지 말라.생명이 아직도 그에게 있다” 하고 그를 살렸습니다.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졸려서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 사건이 말하려고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 본문의 핵심 주제는 사도행전 당시 말씀의 은혜가 어느 정도로 컸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밤이 새도록 듣고 싶고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최근에 밤새도록 찬송 불러보고 밤새도록 기도하고 밤새도록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가 부흥할 때 설교가 길었습니다. 예배시간도 길었다고 합니다.

대부흥 운동이 일어날 때는 10시간 동안 설교를 한 기록도 있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그 안에 은혜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신앙생활에 은혜가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갑니다. 초대 기독교의 부흥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는 게 좋기 때문에 이자리에 있는 줄 믿습니다.

 

저도 몇해 전에 어느 교회의 심야기도회에 가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제가 설교를 아주 길~~게 해서 45분을 했습니다. 그리고 찬송부르고 축도하고 집에 가려고 하니까 '더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준비한 설교가 여기까지 입니다.” 라고 했더니 너무 짧다고 아쉬워하더라고요.

제가 설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라서 그 열심과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대단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님 말씀은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기 시작하면 밤새도록 들어도 좋은 것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던 유두고가 설교시간에 졸다가 떨어졌다는 사실에서 유두고라는 청년이 형편없는 사람이었을까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두고가 졸았던 것은 피곤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마 유두고는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하루종일 일을 하고 밤새도록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육체적으로는 얼마나 피곤하고 지쳤을까요?

가끔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조는 분들이 있는데, 어떤 목사님은 존다고 뭐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곤한데도 예배드리러 온 것이, 예배 안 드리는 것 보다 훨씬 나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성경에서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준다고 하지 않았습까?

 

어떤 분은 “아~ 오늘 피곤하니까 오늘은 교회에 가봐야 졸게 분명하니까, 오늘은 교회 안간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 여러분, 교회는 피곤해도, 졸려도, 아파도 오는게 정상입니다.

 

하루종일 육체노동에 피곤한 유두고가 그래도 집에 가서 그냥 자지 않고 그곳까지 왔으니 그의 믿음도 대단한 것입니다.

다만 유두고의 실수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런데 유두고가 졸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1. 자리를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라고 적고 있습니다.

왜 젊은이가 창에 앉았을까요? 그것은 자기가 주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창가에는 걸터 앉아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본래 앉아야 할 자리는 아니지요.

걸터 앉는 것은 어중간한 자세입니다. 앉은 것도 아니고 선 것도 아니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도 아니고 듣지 아니하려는 자세도 아닙니다.

이것도 구경하고 저것도 구경하려는 ‘적당히’의 태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집중력입니다. 그 집중력이란 자기의 자리를 알고 그곳에서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새롭게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에게 그 분이 있을 곳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게, 그 분에게 좋은 일인가를 같이 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음향시스템이 독특합니다. 자리에 따라서는 잘 들리는 곳이 있고, 웅웅대고 잘 안들리는 자리도 있습니다.

 

 제단 앞으로 가까이 나아와 앉는 자리를 정하여야 한다. 유두고의 실수는 자기의 자리를 알지못했기 때문에 창문에 걸터앉았다가 떨어지는 결과가 있었던 것입니다.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복된 사람은 복된 자리를 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깨어있지 못하였습니다.

20:9 중반절,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졸고 있다는 것은 피곤함도 있지만, 말씀에 깊이가 없을 때 나타납니다.

저는 영화관에 잘 안가는 편입니다. 영화관에 가면, 스르르 잠이 듭니다. 10개를 가면 8개는 잠들어 버립니다. 작년에 랑케스터의 밀레니엄 극장에서 하는 뮤지컬“지저스,” 또 몇해 전에 미국극장에서 상영했던 국제시장 같은 영화를 보러갈 때에는 교회 교인들을 모시고, 밴을 운전해서 가는데, 그 때에는 졸기는커녕 집중하고 보았습니다. 그 스토리를 아니까, 피곤해도, 졸지 않고 보게 되더군요.

말씀의 은혜가 있게 되면, 영적으로 깨어 납니다. 우리 성도들도 영적으로 방심하거나 안일한 것이 아니라, 깨어 있어야 하고, 깨어 있으면 영적으로 더 깊어집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12제자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14: 38)고 하였습니다.

시험당하는 것은 깨어있지 못할 때입니다.

운전할 때 졸음운전을 하는 것이 위험합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밤에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야, 낮에 활동이 가능합니다. 밤새도록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를 하고, 술을 먹고 하면, 일상의 삶에 지장이 있는 것입니다.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규모있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신앙생활하면 먼저 세상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들과 결별을 하게 됩니다. , 도박..

토요일에 늦게까지 잠 안자고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면, 주일에 교회 오기 어렵습니다.

새벽에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 보면, 밤에 잘 자야 옵니다. 밤에 2, 3시까지 잠을 못자면 새벽기도회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일상의 삶에서 또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는 피곤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생활에서 주는 파워를 경험한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고, 신앙생활에서 영적으로 건강해지고 정신적으로도 단단해 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20:9 하반절,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유두고는 떨어졌습니다. 예배시간에, 설교시간에 떨어져 죽었다는 것은 충격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신앙이 쭉 성장하고 성숙해서 올라가지 못하고 떨어지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떨어지는 높이에 따라서 때로는 다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다가 떨어지면, 상처가 되고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다행히 바울이 그를 살려냈는데, 주변에서 떨어진 사람을 고치는 사람이 있다면 다행입니다.

우리 각자는 우선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하고,

사단이 우리를 자꾸 넘어뜨리고 떨어뜨리려고 할 때, 깨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떨어지는 이유는 있습니다.

설교가 길어서이기도 하고

창문에 걸터 앉아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피곤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성숙하고 성장하고 올라가는 신앙이 있기를 바랍니다.

 

금년에 우리교회가 기적이 체험되는 해가 되기를 원하는데

신앙생활에 기적적인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금년에 기대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예배시간이 좀 더 은혜스러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 모 집사님이 지난주에 “목사님, 요즘은 목사님 설교가 졸리지 않아요.” 라고 이야기를 하셔서 웃었는데, 그 이유는 그 집사님이 요즘 은혜스럽게 신앙생활하고 있어서이지요.

예배 준비가 예배 시간전에 잘 준비가 되고, 예배하러 모이시는 분들도 15분 전에 오셔서 미리 기도하시고 마음 준비하시고 은혜가 충만해 지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시간이 좋아지고, 신앙생활이 즐거워지고. 말씀의 은혜를 받게 될 때, 어떤 축복이 나타날까요?

그 결과로 인생의 변화가 나타나고, 관계의 변화가 나타나고, 인격과 예의와 품격이 나타나고, 크리스천의 향기가 나타나게 됩니다. 크리스찬으로서 성숙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시고, 힘든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능력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