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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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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성도의 교제

본문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서 에베소교회에 있는 장로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마지막 설교를 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의 일행은 기근을 당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하여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17절에 보니,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청하였을까요?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와 수리아 지역을 두루 거쳐 밀레도에 도착한 바울은 밀레도에서 30마일 떨어져 있는 에베소교회를 코앞에 두고도 방문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은 온통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바울은 -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들을 청하여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 살아가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사람, 만나면 힘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울이 에베소의 지도자들과 깊은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었고, 친밀한 관계를 갖게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9절에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이 둘 사이에는 겸손이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그냥 겸손이라고 말하지 않고, ‘모든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겸손이라는 말입니다. 어느 한순간에만 겸손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경우에서 겸손을 추구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언제나 사람을 얻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하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잠언 16:18)

 

신앙의 공동체에서, 겸손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똑똑하고 잘난체 하는 사람에게는, 머리로는 끄덕거릴 지 모르지만, 마음은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전도할 때에도, 논리를 써서 굴복시키면, 논쟁에서는 이기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의 마음과 영혼은 얻지 못합니다. 차라리, 논리는 떨어지더라도, 마음이 겸손한 사람은 그 사람과 깊은 관계를 얻게 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고후 11:18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또 빌 3:5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난 도시 출신입니다. 바울은 일곱 위대한 라반(우수한 랍비) 중 일인자인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고 교만할 때에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서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다음에 180도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천하고 초라하고 낮은 자인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의 그의 고백은 달라졌습니다.

고전15: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사도바울은 자신을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요,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가장 낮게 내려놓았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겸손히 낮아진 바울을 귀한 사도로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원리입니다.

낮아지는 것이 비굴해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비굴한 것은 어쩔 수 없어서 낮아지는 것이지만, 겸손은 그렇지 않아도 되는게 낮아지는 것입니다. 사장도 국회의원도, 지도자들도 낮아지면, 더 존경을 받습니다.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높이 있는 사람들이 교만하면 적대감을 갖게 만듭니다. 그것을갑질 한다고 하지요.

높은 사람이 낮아지면, 존경을 받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분들이 높은 직위나 지위에 올라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낮아지시면, 하나님의 귀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더 세워주실 것입니다.

 

(2) 에베소의 교인들과의 성도의 교제에는 눈물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31절에 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이 하나님을 섬길 때, 얼마나 진지하게 그 사역을 감당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직업의식 때문에 주의 사역을 감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정말 눈물로써 사람들에게 호소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어떤 성격이었을까요? 물론 예수님은 겸손하고 때로는 촌철살인의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을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유머감각이 풍부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마음이 시원해지고, 3일동안 말씀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고, 말씀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따라다닌 것만 보아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때때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에서도 눈물을 흘리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면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종종 아주 냉정한 사람에게-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주를 섬기는데 눈물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아주 냉정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깊은 사랑보다는 자기의 의로 신앙생활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은혜가 있는 분들은 대개 감동을 잘 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영못하네.

저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물 삼으시고 죄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3)사도바울과 에베소교회 교인들은, 시험을 참고 인내하였습니다.

인생도 그렇고 신앙생활에도 그렇고 시험을 당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 없는 자였다고 했는데,

그렇게 율법을 철저히 지키던 사람이, 율법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 믿음으로 의로워진다고 복음을 전하고 있으니 어찌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사도바울이 가는 곳이라면 끝까지 따라다니며 복음을 방해하였고 해하거나 죽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할 때에도 시험이 있습니다.

때로는 삶이 스트레스가 있어서 시험에 시험 들기도 하고, 때로는 인생이 너무 편안해서 유혹에 넘어가서 시험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교회 일을 하다가 시험에 들기도 하고, 성도와의 관계로 시험이 들기도 하고, 가정과 사업문제로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시험을 당하지 않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 시험중이신 분이 계시다면, 나만 시험 당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라면 누구나 시험을 당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12)

시험을 참아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험을 참아 정금같이 나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과 에베소의 교인들 사이에는 이러한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서 뜨거운 성도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우리교회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얼음이 담긴 양동이 속에서 사람이 맨발로 얼마나 오래 서서 버틸 수 있는지를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 가지 요인이 작용하면 보통의 경우보다 두 배나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답니다. 그 한가지 요인이 바로 격려였답니다.

도움과 격려를 주는 사람과 함께 한 실험 대상자는 그렇지 않는 실험 대상자보다 고통을 훨씬 오래 참을 수 있었답니다.

예전에 2002년에 한국에서 월드컵에 대한민국이 4강에 오른 이유중에 하나가

관중들의 폭발적인 응원이 한몫을 감당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격려의 중요성을 가장 잘 표현해 준 사람 중의 하나는 미국의 시인이자 작가인 윌리엄 아더 워드 (William Arthur Ward) 입니다.

"나는 아첨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비판하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았다.

무시하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나 격려해 주는 사람은 절대 잊지 않는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Flatter me, and I may not believe you. Criticize me, and I may not like you. Ignore me, and I may not forgive you. Encourage me, and I will not forget you. Love me and I may be forced to love you.”

 

격려의 한마디로도 사람을 힘내게 하고 용기를 얻게 한다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이렇게 하는 겁니다. "You are the Best!"

 

인간은 격려 받아야 잠재력이 발휘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역을 많이 해야 할 지도자일수록 더 많은 격려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격려 받아야 할 존재이면서 동시에 격려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가정과 교회 안에서도 서로 많이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2부 예배후에 신천직분자 몇분을 선출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의 지도자로 역할을 감당하실 것을 믿고 선출합니다만,

이 분들이 우리의 지적과 비난을 받으면,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격려를 받고, 기도를 해주고 함께 주의 일을 감당하게 된다면, 더욱 더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귀한 사람들로 쓰입 받게 될 것입니다.

금년에도 우리교회 안에서 함께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되시고, 치유와 회복, 성장과 부흥이 있는 교회와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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